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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詩 읽기

릴케가 사랑한 14세 연상의 연인 루 살로메

그녀에게 헌정한 <기도시집> 중에서

마음건강 길 편집팀  |  편집 김혜인 기자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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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 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 루 살로메에게 헌정한 <기도시집>의 제2부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1926),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작가 


당시 오스트리아 · 헝가리 황실의 직할지였던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도이치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 가정에서 태어난 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도이치어권 시인의 한 사람이다. 

우리에게 소설 <말테의 수기>로도 유명하며 시인 김춘수와 윤동주 등 많은 우리나라 시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도 릴케의 이름이 등장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아련한 향수, 그리움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이 이름은 그야말로 시인의 대명사다. 세계인에게 가장 많은 애송시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구슬 굴러가는 것 같은 유성음으로 이루어진 이름만으로도 릴케는 시인답다. 릴케를 불멸의 시인으로 키운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의 만남은 그중 각별한 것이었다.

1897년 22세 청년 릴케는 자기보다 14살 연상인 러시아 출신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만나자마자 사랑의 거센 폭풍에 휘말려 들어갔다. 당대 멋진 여성의 대명사였던 그녀는 릴케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모성의 여인이었다. 시원하면서도 강렬하고 자유분방한 정신세계는 또한 릴케의 젊은 열정과 만나 불꽃을 튀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만나자마자 릴케의 가슴은 루 살로메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시도 쉴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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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살로메

 단순한 애정관계로 시작했지만, 릴케에게 루는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정신적인 반려였다. 그녀는 릴케에게 어머니로부터 받지 못한 모성적인 사랑의 제공자였고,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데 미숙한 시인에게 현실적인 길을 안내하는 정신적 후원자였다.

두 사람은 함께 공부하고 러시아 등 몇 차례에 걸쳐 함께 여행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더욱 가까워졌다. 러시아의 자연과 소박한 슬라브 농민들 속에서 《나의 축제를 위하여》,《사랑하는 신 이야기》,《기도 시집》,《형상 시집》 등을 발표했다. 이때 릴케의 정신적 성숙과 시인으로서 풍모가 깊게 다져진다. 

이후 릴케는 살로메와 헤어진 후 1902년 이후 파리로 건너가 조각가 로댕의 비서가 되었는데, 그는 로댕의 이념인 모든 사물을 깊이 관찰하고 규명하는 능력을 길렀다. 

1913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릴케는 작품 활동을 중지했으며 10년간의 침묵 끝에 1923년 스위스의 고성에서 최후를 장식하는《두이노 비가(de)》,《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발표하였다. 그의 모든 작품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영혼의 부르짖음으로써 높이 평가되고 있다. 

릴케는 수많은 사람들과 편지로 교류를 하였다. 당시 삶과 예술, 고독, 사랑 등의 문제로 고뇌하던 젊은 청년 프란츠 카푸스(de)에게 보낸 열 통의 편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독일은 물론 미국에서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51세 나이인 1926년 장미 가시에 찔려 파상풍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단지 백혈병에 걸렸을 때 장미 가시에 찔렸던 것이다. 릴케의 묘비에 새겨진 유언 때문에 많이들 그렇게 오해했던 것이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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