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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중 교수의 음식예찬 10

'먹방'이 대세인 세상, 200년전도 그랬네

연극 <검찰관>, 19세기 러시아 신랄하게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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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의 검찰관 연극

 고골의 희극 <검찰관(Revizor, 1836년>은 사기꾼에 관한 코미디다. 수도의 하급관리인 흘레스타코프는 도박 때문에 무일푼 신세가 돼 어느 마을의 여관에 묶여 있게 된다. 그런데 그 마을의 관리들은 암행 검찰관이 내려올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해 놓았던 터라 홀레스타코프를 검찰관으로 오인한다. 

그래서 흘레스타코프에게 온갖 뇌물과 아부를 다 바치고, 흘레스타코프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받아 챙긴다. 그는 심지어 군수의 딸에게 청혼까지하고는 유유히 마을을 떠난다. 관리들은 그가 떠난 후에야 상황을 파악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그때 진짜 검찰관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검찰관>은 19세기 제정러시아 시대, 뇌물과 각종 비리가 판치는 관료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 재치로 지금까지도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끄는 희극이다. 그런데 이 모든 스토리와 메시지를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음식’이다. 등장하는 인물들과 행위를 이끄는 소재가 바로 ‘음식’인 것이다. 

예컨대 무능하고 하잘 것 없는 하급관리 흘레스타코프가 시골관리들을 현혹시키는 담대한 사기꾼으로 변하는 코드가 ‘음식’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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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

 여관방에서 외상으로 먹고 자고 있던 흘레스타코프는 우연히 여관 식당에서 수다쟁이 마을 사람 둘의 점심 식사하는 모습을 ‘게걸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 심상치 않게 생각한 수다쟁이 마을사람 둘은 이 사람이 바로 시골 지역을 암행 감사하는 검찰관으로 ‘오해’하게 되고 이래서 온갖 포복절도할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우선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마을 군수가 여관에 찾아와 ‘검찰관’ 흘레스타코프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온갖 아첨을 떨기 시작하며, 이어 다른 관리들, 자선병원장 등 지역 유지들의 향응이 잇따른다. 주인공과 한 마을의 지도급 인사가 주고받는 말을 들어보자. 

흘레스타코프: 식사가 아주 훌륭하더군요. 배불리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그렇게 식사를 하십니까?

군수: 귀한 손님을 위해서만 일부러 마련을 하지요.

흘레스타코프: 저는 먹는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사람은 만족이라는 꽃을 따기 위해 사는 법이지요. 그 생선 이름이 뭐라구요?

아르테미 필립포비치: (잽싸게 다가가며) 절인 대구입죠.

흘레스타코프: 아주 맛있더군요. 그런데 우리가 식사한 곳은 어디였죠? 병원이던가요?

(… …)

군수: 가…가…각…하.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떠실런지요? 방 안에 모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흘레스타코프: 쉬다니, 무슨 쓸 데 없는 소리를…. 하지만 좋소. 좀 쉬도록 하지. 여러분, 대접해 준 식사는 훌륭했소. 아주 만족하오. 만족해. (웅변 투로) 절인 대구여! 절인 대구여!

 

이런 식의 대화를 다 듣고 난 다른 관리는 감탄조로 외친다. 

“저분은 정말로 대단한 인물이오!. 저런 분이야말로 대단한 인물이라니까! 저렇게 높으신 양반과 같이 있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소."

흘레스타코프와 자선병원장과의 대면 역시 음식 얘기로 이어진다.   

작가 고골은 이런 음식 이야기를 통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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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인 대구

 <검찰관>의 음식은 무엇보다 등장 인물들의 ‘삶의 범속성’을 보여준다. 범속성은 ‘세속적이고 헛된 욕망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 그 이상의 아무런 꿈도 없는 삶, 낡고 진부한 삶,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삶, 이런 것들이 모두 범속성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그냥 그럭저럭 삶아가는 삶, 모두 음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삶의 가장 비루한 면면에 대한 철학적 판단인 셈이다.

# 편집자 생각: 요즘 ‘먹방 프로’가 대세인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서 같은 생각이 든다.

 ※ 출처: 석영중 교수 저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예담, 2013)

글ㅣ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며 고려대 중앙도서관장을 겸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본연의 연구, 교수 활동은 물론 강연, 집필, 방송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2000년에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슈킨 메달을 받았고 제 40회 백상출판번역상을 수상했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한국슬라브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뇌를 훔친 소설가>, <러시아 시의 리듬>, <러시아 현대 시학>, <러시아 정교>, <석교수의 청소년을 위한 번역 교실>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뿌쉬낀 문학작품집>, <분신>, <가난한 사람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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