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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의 나를 찾아줘

느긋한 남편의 성격이 좋아 결혼했으나…

날 힘들게 하는 마음 속 ‘가혹한 어머니’

김소원 심리상담사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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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미선 씨는 우울감과 무기력한 상태를 변화시키고자 상담실을 방문하였다. 그녀의 표정은 지쳐 보였고 상담자인 나의 물음에 냉소적이고 짧은 대답만을 할 뿐이었다. 미선 씨는 두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미선 씨가 하고자 하는 대로 응해주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순응적인 사람이었다.
미선 씨는 가족 내에서의 역할 과부하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고 순순히 응하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은 들었지만, 때로는 남편이 주도적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매우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고, 미선 씨가 해야 할 과업은 늘어갔다.
 
“남편은 제가 시키는 ‘딱’ 그것만 해요. 변기 청소를 해달라고 부탁하면 변기만 청소하고 세면대나 욕조는 그냥 내버려 두는 식이죠. 아이들 숙제를 봐달라고 하면 오늘만 하고 내일은 하지 않아요. 내일이 되면 저는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 해요. 마흔이나 되었는데도 왜 그럴까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그녀가 느끼는 남편에 대한 불만과 역할 과부하로 인한 피로감, 무기력감에 대해 충분히 털어놓도록 들어주었다. 그녀에게서는 조급함과 초조함이 느껴졌고, 불안해하는 표정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회초리를 들고 쫓아다니며 그녀를 다그치는 것 같아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미선 씨가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일하는 것 같아 그걸 보는 저 또한 초조하고 다급한 마음이 들어요. 잠시 앉혀서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안심시켜주고 싶어요."
그녀는 미처 마주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들킨 듯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이내 흐느끼며 말했다.
“부모님은 제가 어렸을 적부터 행동을 똑바로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셨죠. 동생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셨지만, 맏이인 제게 더 가혹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어린아이에게 왜 그렇게까지 호되게 잔소리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특히 어머니는 제가 숙제를 제때 해놓지 않거나 방을 치워놓지 않으면 경멸의 눈으로 저를 쳐다보셨어요. 아직도 저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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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 씨는 모든 일을 정확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며 자랐고, 직장생활을 할 때도,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녀는 강박적으로 과업에 매달렸다. 그런 그녀에게 ‘느슨한’ 성향의 남편은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대상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채찍질하거나 다그치지 않았고,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횟수를 거듭하며 남편의 관대하고 느슨한 성격이 답답함으로 다가왔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버거움을 느끼며 번아웃이 찾아왔다.
 
정신분석에서는 아버지를 모델로 해서 남편을 선택하는 여성 중에 많은 경우, 그들이 결혼생활을 할 때 어머니와의 나쁜 관계를 남편에게 반복한다고 이야기한다. (Freud, 1931) 미선 씨의 경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반복했던 능동성(지배)-수동성(복종)의 관계 패턴이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능동성을 발휘하고, 남편이 수동적 태도를 취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수동에서 능동으로의 전환, 혹은 공격자와의 동일시라고 부른다. 개인의 삶에서 억압된 에너지는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표출하고자 한다.
 
미선 씨와의 상담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것은 어머니와의 능동성-수동성의 관계 패턴을 결혼생활에서 남편과 반복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도록 돕는 작업, 그리고 어린 시절 그녀가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했던 일련의 노력에 대한 인정과 그 속에서 소외된 자아를 보듬어주는 일이었다. 우리는 늘 두 가지 자아 속에서 갈등한다. ‘사랑받기 위한 나’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나’. 둘 중 더 우세한 쪽이 우리의 행동을 이끈다.
 
그녀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은 부모라는 권위자에 의해 만들어진, 무의식 속에 각인된 삶의 태도일 것이다. 그러한 권위자의 방식에서 벗어나 주체로서 자신을 바라보고, 스스로 더 너그러워지는 일이 그녀에게 필요하다. 그녀가 무리하게 짊어진 삶의 과업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남편을 믿고 충분히 의지해보는 일 또한 앞으로의 삶에서 시도해보아야 할 것이다. 미선 씨의 ‘조금 가벼운 삶’을 기대한다. 
 
※ 이 글에 소개된 사례는 내담자의 동의를 받아 작성했고 privacy를 위해 가명 사용 및 일부 상담내용을 각색했습니다.

 

글ㅣ 김소원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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