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목요 연재 | 송종찬의 시베리아 유랑기 (21)

겨울밤 라라의 사랑이야기

책상 위에 '닥터 지바고'를 다시 펼쳐 보다

송종찬 시인  2020-10-29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common (3).jpg
영화 '닥터 지바고'

 

겨울이 오면 우랄산맥이 있는 동쪽으로 자주 고개를 돌렸다.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색의 설원을 가르며 증기기관차가 달리고, 내뿜는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전쟁과 혁명으로 얼룩진 대지를 눈은 잠시나마 동화의 나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간이역에서 내린 남녀는 마차를 몰고 폐허가 된 얼음집에 당도했다. 빈 집에는 온기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온몸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두 사람은 사랑의 불꽃을 피웠다. 행복도 잠시, 이별의 날은 다가오고 창틀까지 내려온 고드름을 바라보면서 사내는 밤새워 이별의 시를 써내려 갔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장면이다.


책상 위에 소설 ‘닥터 지바고’를 다시 꺼내 놓았다. 러시아의 수많은 고전 중에서 닥터 지바고가 겨울소설로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어나가다가 작품의 무대가 된 모스크바 근교의 페레델키노 작가촌을 방문했다. 작가 파스테르나크가 살던 집이다. 


ph.jpg
파스테르나크 생가

 

아름드리 숲길을 지나자 작은 골목이 나오고 울타리 사이로 이층집이 보였다. 생가는 자작나무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창작의 무대는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작가의 냉정과 열정은 활엽수인 자작나무와 침엽수인 소나무 숲 사이에서 함께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지바고는 의사이자 시인이었다. 낮에는 밥벌이를 위해 해부실에서 메스를 잡고 저녁에는 책상 앞에서 시를 썼다.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혁명가도, 출세지향적인 의사도 되지 못한 채 회색지대에서 방황했다. 그뿐 아니라 아내인 토냐와 애인인 라라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연민과 애정을 넘나들었다. 

개인적으로 파스테르나크를 좋아하는 이유는 문학성이 뛰어난 부분도 있지만 내 삶의 궤적과 비슷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의 광풍이 휩쓸던 1980년대에 나는 투사도, 학생도 되지 못한 채 건달처럼 살았다. 사회진출 후에도 낮에는 봉급쟁이였다가, 퇴근 후에는 책상 앞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돈도 안 되는 시집을 읽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바고 만큼이나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갔다.


파스테르나크 생가를 둘러싸고 있는 자작나무와 소나무는 완벽한 대비였다. 자작나무에서 여성성이, 소나무에서 남성성이 느껴졌다. 나뒹구는 솔방울에서 바람소리가 흘러나왔다. 길게 자라난 고드름을 피해 생가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1층은 그가 살던 거실이었고 2층은 서재였다. 해설사는 파스테르나크가 1층에서 휴식을 취하고 2층 서재에서 밤새 닥터 지바고를 써내려 갔다고 설명했다. 사모바르에서 차가 끓어 넘칠 때 그가 피우던 파이프 담배연기가 창 틈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집필할 때 썼던 잉크병과 만년필이 눈에 들어왔다. 집 분위기는 영화 속에서 지바고가 머물던 공간적 정서와 매우 비슷했다. 그는 10여년에 걸쳐 닥터 지바고를 써내려 가면서 암울한 스탈린시대를 견뎠다.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광폭의 시대에 닥터 지바고를 통해 사회적 모순을 얘기하면서도 문학의 순수성을 지켜나갔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닥터 지바고는 서정과 서사, 시와 소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가장 아름다운 문학작품이다. 닥터 지바고 영화를 몇 차례 보았지만 책이 주는 감동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의 문장은 영화보다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자연을 묘사한 부분은 시보다 더 감각적이고 회화적이었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작가 중 도스토예프스키가 심리적, 톨스토이가 철학적이라면 파스테르나크는 가장 문학적이다.


소설 닥터 지바고는 반체제적이며 자유주의 성격 때문에 처음에 러시아에서 출판되지 못했다. 1957년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닥터 지바고’로 파스테르나크는 이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자유주의적 소설로 낙인이 찍혀 추방의 위기에 놓이게 되자 조국을 떠난 작가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끝내 수상을 거부한다.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비장하게 노벨상 선정 소감을 밝히는 한 장의 흑백사진이 벽면에 걸려 있었다. 열띤 얼굴에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에 대한 환희와 함께 수상자 선정에 따른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스탈린시대의 예술과 문학은 당파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mask (1).jpg
생가 침실에 걸린 데드 마스크(안면상)


2층에서 내려와 마지막 숨을 거둔 침실로 가보았다. 하얀 시트 위에는 반쯤 시든 장미꽃이 놓여 있고 창가에는 그의 얼굴을 본뜬 데드 마스크가 있었다.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는데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시민의 장례행렬이 수 백 미터에 달했다고 한다.


지바고가 사랑했던 ‘라라’, 만일 내가 그녀를 알았더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라라는 왜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을까. 라라는 사랑의 대상이자 연민의 대상이기도 했다. 라라는 고교시절 어머니의 정부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만다. 그녀는 이성적으로는 정부를 거부하면서도 육체적으로는 욕망에 이끌리는 자신의 이중성에 환멸을 느낀다. 

육체와 이성, 현실과 이상 간의 처절한 내면의 싸움이 그녀의 깊이와 매력을 만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이중적이다. 피카소의 자매라는 그림에는 창녀와 수녀가 된 쌍둥이가 그려져 있는데, 라라는 결핍 때문에 사랑스러웠고 욕망 때문에 아름다웠다. 라라는 애정 없는 결혼을 한 후 뒤늦게 지바고를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이 빛났던 것은 내일을 알 수 없는 현재성에 있었다. 1차 세계대전, 혁명, 내전이 차례로 이어지던 시기로 늘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 다녔다. 전쟁과 혁명이 있었기에 그들의 사랑은 빛났고 이별은 참혹했다. 고난은 사랑을 더 비극적으로 만들었고 비극적인 사랑은 불멸의 사랑을 완성했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턱 밑에서 차오는 죽음의 계곡을 관통하면서 사랑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참혹한 시간을 견디어 낼 수 있었겠는가.

 

러시아는 추위 때문에 사람들이 기피하지만, 추위 때문에 살만한 곳이기도 하다. 몰아치는 폭설과 북풍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든다. 아주 멀리 있는 봄햇살은 그리움을 샘솟게 한다. 창 밖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이면 라라와 지바고의 마가목 열매처럼 붉은 사랑을 떠올렸다. 파스테르나크가 십여 년 동안 채워 나갔을 원고지를 생각하며 한 장 한 장 소설책을 넘겼다.


범우사에서 출판된 닥터 지바고의 표지에는 “그들의 애정은 그들 자신보다는 발 밑의 대지와 머리 위의 하늘과 구름, 수목들이 원하고 있었다. 오~ 내사랑 라라"라고 쓰여 있었다. 라라와 지바고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감상하고 있는 연인들의 가슴에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일까.

 

 

마음의 서쪽


당신이 서쪽으로 떠난 뒤

나는 동쪽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눈발 속으로 사라진 뒤

나는 파도처럼 일렁거렸습니다

텅 빈 대합실에서

책을 읽다가 돌아서길

하루 이틀 사흘

침묵을 싣고 기차는 떠나고

플랫폼에는

갈매기 울음만 가득합니다

당신이 자작나무를 스칠 때

나는 등대처럼 반짝였습니다

당신이 간이역을 지나쳐갈 때

나는 종착역이 되었습니다

글ㅣ 송종찬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전공했다.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시집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첫눈은 혁명처럼’ , 산문집으로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이 있다. 2011년부터 4년여 동안 러시아 체류하며 외국문학도서관 부설 루도미노출판사에서 러시아어시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Транссибирские Ночи) 을 출간했고, 루스키미르재단의 초청작가로 활동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무단 전재 및 배포 금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