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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토요 스토리 (16)

혜화칼국수에서 느낀 ‘연애의 맛’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데이트하자!”


“어디, 피시 앤 칩스 맛있는 데 없을까?"

음식 선택권은 늘 내 차지였다. 남편은 웬만해선 먼저 메뉴를 고르는 법이 없었다. 나와 아이를 위한 배려였다. 어떤 걸 고르든 함께, 맛있게 먹어줬다. 그런 남편이 얼마 전, 피시 앤 칩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영국 대표 요리니까 이태원 식당을 검색해봐야 하나, 아니면 웬만한 메뉴가 종류별로 즐비한 강남 쪽을 살펴야 하나 고민했다. 휴대전화로 한참을 검색했는데도 딱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지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먹고 싶은 걸 말했는데, 이왕이면 제일 맛있는 곳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맞다,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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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했던 곳이 떠올랐다. 혜화 칼국수. 시그니처 메뉴는 안동식 사골 칼국수다. 고깃국물을 머금은 칼국수는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랄까. 사실 칼국수 한 그릇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식탐을 부르는 메뉴는 따로 있다.

 흰 생선 살을 두툼하게 썰어 바사삭하게 익힌 생선튀김. 촉촉한 속살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바삭한 튀김 옷, 꾸밈없는 담백함은 생선 비린내에 예민한 나조차도 무장해제 하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그 맛을 알고 나면 주문하지 않을 수 없는 곁들임 요리다. 여기에 부추김치를 더하면 어떤 것도 부러울 게 없는 상태가 된다. 이곳이라면 어지간한 피시 앤 칩스 전문점 못지않은 생선튀김을 남편에게 맛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월요일에 휴가 내고 생선튀김 먹으러 갈까?"

 

둘만의 외출이 얼마 만인지, 기억도 가뭇했다.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라디오를 듣다가, 휴대전화도 보다가, 창밖도 살피다가 남편과 연애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우리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일하다 열 받은 이야기, 주말 데이트 계획, 맛집 정보, 좋아하는 노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뉴스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퇴근 후 만나 집 앞에서 헤어지기까지, 순식간에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때 알았다. 결혼을 앞둔 커플들의 ‘헤어지기 싫어서 결혼을 결심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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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을 훌쩍 지나서야 칼국수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별말이 없었다. ‘평일인데 차가 왜 이리 막히지?’ ‘와, 운전 진짜 험하게 하네!’ ‘라디오 DJ 누군지 알아?’ 이따금 건네는 말이 전부였다. 둘만의 시간이 어색해진 걸까. 아니면 늘 세 식구가 함께하다가 그중 하나가 빠져서 허전한 걸까. 똑 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는 지금 상황을 나름대로 분석해봤지만, 이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왔다는 게 마음에 걸려 생각을 줄였다. 다행히도 이날 식당 선정은 성공적이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생선튀김이 남으면 포장해갈 요량이었는데, 남편의 입맛을 사로잡은 듯 보였다. 생선튀김 대신 칼국수를 남기고 우리는 식당을 나섰다.


아이스 라테 한 잔을 사서 차에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행복했다. 이날만큼은 오롯이 남편과 나, 우리 두 사람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음식을 고를 땐 아이가 먹을 수 있는지를 우선했고, 좋아하는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여유 있게 마셔보지도 못했다. 식당에 가도 아이를 챙기느라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틈이 없었다. 연애 시절처럼 눈 한 번 맞추기는커녕 오로지 먹는 데만 집중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과 그 사람이 먹고 싶은 생선튀김을 즐기고, 또 내가 사랑하는 커피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그 날, 그 시간이 더없이 소중했다.

 

“행복 별거 아니네. 이런 게 행복이지 뭐."

 

차 안을 가득 메운 그 날의 적막은 우리가 그동안 엄마, 아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흔적일 거다. 내가 나로, 그가 그로, 또 우리가 우리로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쌓인 결과다. 한 마디로, 데이트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때로 돌아가려면?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데이트하자! (휴가 내고!)"


글ㅣ 김명교
12년 차 교육 기자다. 집에선 다섯 살 달콩이의 엄마다. 교육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취재원의 이야기를 귀동냥 삼아 ‘잘 키워보자’ 했지만, 워킹맘의 현실 육아는 버거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번아웃과 우울증 사이에서 무너졌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am-un) 일과 육아에 가려있던 ‘나’를 일으키고 마음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글을 쓸 때 마음이 벅차오른다. 글 속에 찰나를 담아내고 싶어 오늘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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