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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연재 | 최찬희의 산중일기

풀 한포기, 벌레들과의 대화

산중 자족 (山中 自足)

최찬희 작가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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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가 서린 유리창을 타고 무당벌레 두 마리가 길게 꼬릿길을 내며 올라가고 있다. 그 몸짓이 워낙 느리다 보니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가도 다시 궁금해져서 살펴본다. 그중 한 놈은 그새 바닥으로 떨어져 있고 한 놈은 천장까지 올라가 있다. 바닥에 있는 녀석은 너무 충격이 컸는지, 아니면 창가에 서린 물기를 너무 많이 먹었는지 미동도 없다.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있는 폼이 우스꽝스럽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톱 끝으로 툭, 쳐본다. 죽지는 않았다는 신호라도 하듯 그 녀석은 윗등 날개를 살짝 올렸다가 내리더니 다시 잠잠하다. 

 처음에는 곤충이 집 안에 있는 게 신기하면서도 영 어색하더니, 이젠 그 녀석들 덕분에 휑한 기분은 덜었다. 심심해지면 녀석들이 어디 있나 몸을 바닥에 가까이 기울여 찾아본다. 이 외진 산골에서 누가 저희를 해칠까 하는 두려운 기색도 없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천연덕스러움에 웃음이 나온다. 주황색 몸체에 검정 반점이 박혀 있는 몸통이 예뻐서 가까이 보고 있자면, 안으로 오므렸던 다리를 밖으로 살짝 뻗거나 등의 날개를 옆으로 벌려 속살을 보여주기도 한다. 


십여 년 전, 베를린에 사는 남동생이 아이들과 함께 와서 우리 집에 잠시 머물 때였다. 네 살, 세 살이었던 조카들을 차에 태우고 옆 동네에 있는 친정에 다녀오면서 들길을 천천히 지나가던 중, 뒷좌석에 있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니 아이들이 뒷좌석 바닥에 엎드려서 뭔가를 살피고 있었다. 너희들 뭐하니? 하고 묻자 아이들이 독일어로 말한다. 뭐라고? 하고 다시 물으니 녀석들이 손바닥에 뭔가를 올려놓고 일어나 우리의 친구야! 그런다. 무당벌레였다. 그 작은 벌레가 어떻게 차 안으로 들어와 아이들이 그렇게 귀여운 소동을 벌였는지. 그때 아이들이 말했던 '우리의 친구'가 지금 이 산방에서 내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씽크대 위에 제법 자란 달팽이가 양 뿔을 길게 뻗치고 떡하니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앞집 아주머니가 뜯어다 준 나물 속에 붙어온 모양이다. 밤이면 딱! 딱!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르거나 날아다니기도 하는 풍뎅이 비슷한 놈도 있다. 돼지빈대라는 놈은 장판 아래에 납작하게 말라붙어 있어서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무척 바쁜 일이 생긴 것처럼 설설 달아나는 돈벌레도 있다. 그 못지않게 다리가 많은 지네도 가끔 눈에 띈다. 

처음에는 독한 약을 써서 저것들을 깨끗이 소탕하려고 맘먹었다가 관두었다. 이러다가 개체 수라도 늘리게 되면 어떻게 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인다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다. 어쩌면 이 방이 생기기 전부터 이 땅에 터를 잡은 주인은 저것들이 아닐까 싶다. 오직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용맹정진하던 이 방의 전 주인들도 다 세상을 뜨지 않았는가. 미물이지만 녀석들에게도 질긴 생명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희와 내가 만난 것도 그 살아 있음의 인연이라 해두자. 이름도, 볼품도 없는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와 같이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다 친구가 되는 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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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마을 오솔길/ 최찬희 작가 제공

 

해발 육백 미터가 넘는 산동네에 몇 달째 머물고 있다. 삶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난 철수상태라고나 할까, 태어나서 가장 연약해진 상태로 자연의 흐름 속에 편승하였다. 그 무엇도 할 필요 없이 오직 순수한 나의 원소 안에서 유영하는 지극한 시간이다. 밤마다 찾아오던 통증도 어느덧 서서히 잦아들었다. 문만 열고 나가면 온 천지가 신성한 생명력으로 이들거린다. 숲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오솔길을 천천히 걷고 있으면 자연의 내밀한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고요한 파장이다. 그 침묵 같은 시간을 횡단하며 나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한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벌리 겹겹이 포개져 흐르는 산세를 바라보며 사방을 촉촉이 적셔오는 빗소리를 듣고 있을 때면 더욱 그렇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일 분 일 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이젠 눈만 떠도 감사하고, 숨만 쉬어도 대견하게 느껴진다. 관성을 멈춘 상태의 막연한 불안감과 가책조차도 살아 있다는 기쁨으로 환치된다. 오직 내 몸이 들려주는 신호에만 충실해도 하루가 이토록 충만한 것을, 왜 그리 밤잠을 축내며 살았나 싶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삶이었던가. 신은 내게 억척스럽게 돌아가던 내 삶의 시계바늘을 일부러 잠시 멈추게 하신 것 같다. 멈춰야 보이는 것들을 보여주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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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마을/ 최찬희 작가 제공

 

방문을 열고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밤꽃처럼 진한 향기를 머금은 죽순이 그 생명력을 불시에 드러낸다. 골짜기의 키 낮은 바위 옆에 붙어 자란, 이름도 모르는 나무의 여린 잎을 뜯어서 무쳐 먹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피는 꽃들은 굳이 방안에 들여놓을 필요가 없다. 창문만 열면 흐드러져 핀 개복숭아 나무의 꽃향기가 저절로 방안을 채운다. 일곱 집 밖에 안되는 산골 마을의 사람들은 너나없이 처음 보는 산나물들과 열매를 한 움큼씩 가져다준다. 이곳 나물 맛은 내가 먹어본 나물 중에 으뜸이었다. 작년에 담갔다며 선뜻 건네준 효소와 소금만 넣어도 맛깔나는 나물이다. 무심하고 투박한 듯하지만, 속 깊은 정이 우러난 맛이다. 

어느 날, 석양이 아름다운 선을 길게 드리우며 방안을 물들일 때, 느릿한 춤사위로 오르던 무당벌레를 따라가려는 듯 귀뚜라미가 창틀에서 계속 뛰어오르고 있었다. 더듬이를 높이 세운, 결의에 찬 그 녀석은 기어코 방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어디선가 나타난 지네가 도망가다가 발랑 뒤집힌 채 말라가던 돼지빈대를 쳤다. 가벼워진 빈대가 날아간 구석에서 갑자기 돈벌레가 급히 달아난다. 마치 바턴 게임이라도 하듯,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대의 분주함이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다.

산 그림자가 골짜기를 완전히 덮고 노을이 사위어지면 설핏 어둠이 찾아든다. 덧없는 것이 산골의 저녁해라던가. 눈이 천천히 암순응할 새도 없이 어느새 남청색 하늘에는 수정 같은 별들이 깔린다. 도시에도 저녁이 내리면 알지 못할 외로움이 끼치는데 산중의 밤은 오죽하랴. 천지간에 나 혼자라는 고독감이 사방을 잠식해온다. 그래도 살아 있다는 감사함에 다시 빈방에 기쁨이 고인다. 혼자라서 외롭고 행복함이 더 진하다. 내가 언제 이렇듯 완벽하게 혼자였던 적이 있었던가. 내 생의 남은 페이지를 그려보는 고요한 설렘이 오늘도 산중의 밤을 지킨다.

글ㅣ 최찬희
중앙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마을> 수필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중앙대문인회 회원, 이음새문학회 회원(2대 회장 역임)으로 활동 중이다. chanhi16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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