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닫으니 마음이 들린다."
내가 2000년대 중반 신문사를 나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미국 컬럼비아대 교재인 《뉴스와 보도News & Reporting》에서 ‘Show, Don’t tell’에 대한 설명을 발견했다.
가장 감동적인 글은 필자가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보여줄 때 나온다. 필자가 일일이 설명을 하면 독자는 수동적이 되고, 필자가 묘사에 그치면 독자는 적극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자기 나름의 생각을 하게 된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쓰고 나서 한 말이다….
그러나 ‘Show, Don’t tell’이 단순히 글 쓰는 기술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강의 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였다. 나보다 한 세대 어린 젊은이들과 진정한 소통은 ‘내가 말할 때보다 그들의 말을 들어줄 때’ 이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말을 하면 그들은 수동적이 된다. 그러나 내가 들으면 그들은 적극적이 된다. 나아가 마음의 문을 열고 호의적으로 나온다. 내가 한 일은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준 것show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세상살이 이치理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보다 사소한 ‘마음’이나 ‘행동’에 더 감동을 받는다. 어렸을 적 시험을 망쳤을 때 어머니가 꾸지람 대신 사준 짜장면 한 그릇, 힘든 이등병 시절 고참이 다가와 말없이 건네준 담배 한 개비, 사건기자 당시 헤매는 나를 삼겹살집으로 데려가 덤덤히 건네주던 선배의 소주잔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혼자 있을 때 존재감이 더 충만해진다
지금 김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글처럼 단순하고 간결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경기도 안산 경기창작센터에서 혼자 글을 쓰고 지내며 주말에는 일산 집에 머무른다.
화창한 어느 가을날 안산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거기에는 일체의 장식이나 번잡함, 군더더기가 없었다. 책상, 의자, 소형 라디오와 오디오, 전기스탠드 2개, 그리고 서류함으로 쓰이는 중국집 철가방이 전부다. 책은 《새우리말큰사전》(상·하), 《옥편》, 이순신의 《난중일기》. 흔한 노트북 컴퓨터도 없고 연필깎이·필통·지우개·원고지가 작업 도구의 전부다.
그는 하루 세 시간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홀로 새·노을·바다·산야를 구경하며 돌아다닌다고 한다.
“난 어려서부터 혼자 노는 걸 좋아했어. 커서도 번잡함이 싫어 평생 가본 영화관이 다섯 군데도 안 돼. (…) 나이 오십 넘어 자전거를 배워 혼자 놀러 다녔지."
그는 지금도 사람 소리, 식기 달그락거리는 소리조차 싫어 집을 떠나 이곳에 머문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고독孤獨’보다는 ‘단독單獨’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고 했다. 고독은 ‘정서적 사태’인 반면 단독은 ‘물리적 사태’를 이르는 단어라는 것이다.
“존재의 본디 모습이 단독 아닌가. 혼자 있으면 더 존재감이 충만해지는데 왜 사람들은 외롭다고 하지?"
그는 아무도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으며, 따라서 스스로 자신을 규율하며 근면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강철 같은 기운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나를 버텨낼 수밖에 없고, 그 기운을 상실하는 순간에 난 모든 것을 잃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의 작업실 벽에는 하루에 원고지 다섯 장은 꼭 쓰자는 의미에서 ‘필일오必日五’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예전에는 군 내무반에 걸려 있던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글귀를 붙여 놓았었다고 한다.
김훈의 글이 서늘하듯이 그를 만나면 서늘하다. 친근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으며, 간혹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글쟁이’ 김훈이 방송인 손석희처럼 말을 잘하거나 세련될 필요는 없다.
이제 김훈 글에서 그의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 그는 다만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독자는 무언無言의 울림을 안다. 어쩌면 ‘Show, Don’t tell’이야말로 온갖 주장과 위선僞善이 난무하는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인생의 경구警句가 아닐까. 나도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나 쉽지 않다. 어느새 남들을 향해 비판하고 주장하고 가르치고 자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