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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물 탐구

80년대 조폭의 상징 김태촌①

인간 내면의 폭력성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함영준  |  편집 하용희 기자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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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대 폭력조직으로 꼽혔던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씨가 지병으로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에서 오늘 사망했습니다. 올해 나이 만 64세인 김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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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2013년 1월 어느 날, 모처럼 집에서 TV를 보던 나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사건기자 시절 취재로 인연을 맺었던 그가 평생 폭력과 범죄의 세계에서 헤매다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이다.

김태촌은 협심증, 저혈압, 당뇨, 폐렴 등을 복합적으로 앓고 있었다. 마피아 같은 조직범죄(Organized Crime) 두목들도 대부분 심장질환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다. 24시간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심장을 혹사시키기 때문이다. 운 좋게 자리를 지켜오더라도 결국 자기 심장의 반란으로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미국에서 조직범죄를 취재하며 알게 된 FBI(연방수사국)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조폭 두목들은, 어떤 의미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겁이 많은 사람들이다."

 

“건장한 청년들 피투성이" 제보가 발단

1986년 광복절 전야인 8월 14일 오후 10시 반.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대형 룸살롱 서진회관 17호실에서 인근 조폭인 ‘맘보파’ 7명이 출소한 조직원의 축하연을 벌이고 있었다. 맘보파는 호남 조폭의 방계 조직으로 강남 일대에서 세력을 확장해나가는 ‘기성 주먹’이었다. 

그리고 바로 옆방인 16호실에서는 이 업소를 관리하는 ‘서울 목포파’ 8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목포파는 경기도에 소재한 모 대학의 유도학과 선후배로 구성된 ‘신흥 주먹’이었다.

맘보파 일행은 애송이 대학생 중심의 목포파를 무시하고 이곳 서진회관을 축하 파티 장소로 정했고, 목포파는 이날 자기네 구역을 침범해 술을 마시는 맘보파가 몹시 신경에 거슬렸다. 그러던 중 사소한 사건이 일어났다. 맘보파 일행이 종업원을 때린 것이다. 

이를 전해들은 목포파 조직원들은 분노했다. 평생 자신들을 무시하는 데다, 자기네 구역에 허락 없이 밀고 들어와 술값도 제대로 안 내고 노는 것도 마땅찮은데, 동생 같은 종업원을 구타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저했다. 상대방은 분명히 자신들보다 실전 경험도 많고 센 상대였기 때문이다. 갑론을박 끝에 목포파는 옆방의 맘보파가 무기도 없는 무방비 상태로 술에 취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좋다. 이번 기회에 이들을 확실히 제압하자."

목포파 조직원들은 생선회 칼과 야구방망이로 무장한 채 17호실로 난입해 닥치는 대로 무기를 휘둘렀다. 한창 취흥에 올라 있던 맘보파 7명은 속수무책으로 당해, 4명이 즉사했고 3명도 만신창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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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뒤인 오후 11시 반, 조선일보 사회부에 다급한 목소리의 시민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 사당동 소재 D병원에 건장한 청년 5~6명이 피투성이가 된 채 실려 들어갔다는 제보였다.

그날 당직이 바로 나였다. 이런 경우 당직은 보통 바깥에서 야근하는 기자에게 취재를 맡긴다. 그러나 사건기자 3년차로 잔뜩 물이 오른 나는 마감시간이 임박한 데다 호기심도 발동해 직접 취재에 나섰다. 병원 주변 파출소와 병원 등에 일일이 전화를 했고 ‘비장(?)의 방법’을 동원해 사건을 파악한 후 데스크(사회부 당직 팀장)에 보고했다.

데스크는 내가 올린 보고내용에 서울을 동서로 나눠 돌고 있던 야근 기자들의 현장취재까지 곁들여 기사를 내보냈다. 사건발생 2시간 만에 취재에서 보도까지 속전속결로 완료된 것이다.

이 기사는 조선일보 1면 톱으로 보도돼 광복절 아침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이다. 한국이 가난에서 벗어나 중진국 대열에 들어선 1980년대 중반, 서울 강남 유흥가를 낀 조폭들의 본격적인 출현을 처음 알린 사건이었다.

당시 시민제보와 발 빠른 취재가 없었더라면 경찰은 쉬쉬하며 이 사건을 덮었거나 단순치사 사건으로 처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발생부터 각 신문마다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일파만파의 영향력을 불러일으켰다.

장안의 화제는 단연 조직폭력배의 세계에 집중됐다. 지금은 ‘조폭’이란 단어가 일상화됐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다. 역대 ‘한국의 주먹’이라고 하면 자유당 시대에 김두한, 이정재, 이화룡 등이 손꼽혔고 이후 명동 신상사파가 명맥을 유지했지만,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잔뜩 움츠리고 있던 시대였다. 그런 가운데 드디어 한국에도 미국 마피아 같은 조직범죄 집단이 나타난 것이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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