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래가 떠난 뒤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갈등과 대립은 더 심해졌다. 상대방이 싫거나, 내 편이 아니거나, 내 이익에 반하면 가차 없이 적으로 몰았다. 무려 500만 표가 넘는 압도적인 표차로 이겨놓고도 순식간에 무정부 상황에 직면한 이명박 정부가 단적인 예다. 그때 밤늦게 청와대의 적막한 정원을 걸으면서 나는 조영래와 망원동 소송을 기억해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의란 누구의 독점물도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남용의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는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지금은 절실하게 마음속으로 다가왔다. 인간은 스스로가 정의롭다고 생각할 때 도리어 불의에 빠질 수 있는 동물이므로 늘 자신을 경계하라는 것이 조변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 지론을 토대로 내 생각을 정리해봤다.
1980년대가 공권력이 강하고 민(民)이 약했다면, 지금은 정반대다. 일부지만 방종한 민의 행동은 실정법을 위반하거나, 공권력으로도 제어가 안 된다. 그러나 민에 의해 민을 견제하는 민사 소송은 가능하지 않을까…? 광화문 주민이나 상인들이 시위단체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시인 안도현은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 말라고, 너는 누구를 위하여 그토록 뜨거워졌던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자기주장이 옳다고 혹은 자신이 정의라며, 시민들을 위해 꾸며놓은 화단과 잔디밭에 들어가 짓밟고 훼손하는 행동은 올바르지 않다.
법률적으로 시위단체의 배상책임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제동은 걸어야 했다. 지금 행동이 필요하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망원동 수재 소송처럼 변호사와 사무장 두 사람만 있으면 된다. 신문 보도를 보니 마침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변호사와 시민단체가 있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들을 만났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이런 공권력 부재의 상황은 막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홍보가 문제였다. 주민들이 나서서 시위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는 내용이 널리 알려져야 했다. 나는 신문사에 있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다.
“부탁이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신문들은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소송은 줄을 이었고, 마침내 8월 들어 MBC 엄기영 사장이 광우병 사태의 발단이 된 ‘PD수첩’에 대해 “오역, 과장이 있었다."고 사과방송을 했다. 이후 시위는 급속히 줄어들고 평화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조용히 세상을 바꾸어 나가던 온유한 모습
인생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 중 나는 조영래에게서 진정한 ‘사람다움’을 느꼈다. 그는 늘 조용했다. 목소리도 나직했다. 사유의 시간이 많았다. 재떨이에는 항상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그러나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모두의 ‘공동선’을 위해서라면 일신의 안위 따위는 그냥 던져버렸다.
조영래를 꿰뚫고 있는 성격적 특질은 무엇일까? 나는 ‘온유(溫柔)’라고 생각한다. 그는 성내지 않고, 오래 참고,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모진 민주화 투쟁에도 부정 대신 긍정을 이야기했고,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기보다 절제했으며, 정의롭게 살면서도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지인이 그를 비난하며 머리에 맥주를 끼얹어도 마치 ‘구도자’처럼 묵묵히 참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험한 시절, 수감되고 고문받고 핍박받았던 조영래는 누구를 증오하거나 독설을 내뱉지도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오히려 그는 조의를 표하자고 주장했고, 전두환 정권의 업적인 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자, “한민족 5000년 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쾌거"라며 행복해했다.
지난날 힘든 시절을 겪었다고 해서 눈에 핏발을 세우고 이 세상을 미움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한때 자신들의 고난이 영원한 훈장인 양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 심지어 이 땅에서 축복받고 존경받는 위치에 오르고서도 증오의 언어와 감정을 여과 없이 배출하는 21세기 지금의 모습은 조영래가 그리던 우리의 미래는 아니었다.
분노는 쉽다. 그러나 참고, 용서하고, 관대하게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 나 스스로 세상살이가 힘들고, 심성이 강퍅해질 때 30년 전 조용히 세상을 바꾸어 나가던 조영래의 온유한 모습이 생각난다. 그 조영래가 지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