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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물 탐구

내가 만난 지휘자 정명훈①

대통령 앞 공연 3시간 전, 세트 철거 요구

함영준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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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정부 주최 신년음악회가 1월 4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이던 나는 이 행사를 진두지휘했다. 3부 요인이 참석하는 신년인사회까지 겹쳐 연말연시 내내 비상근무였다.

이날 오후 행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공연을 맡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자 정명훈 예술감독이 급히 만나자는 것이었다. 무대를 가로질러 가다 한옥 창호를 형상화한 외벽 세트 장치가 눈에 띄었다.

정명훈1-1.jpg

‘예쁘긴 한데 오케스트라 음향이 어떨지….’ 

순간 걱정이 스쳤다. 오페라와 달리 콘서트 무대의 경우 가급적 설치물을 피한다. 소리의 공명(共鳴) 현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휘자 대기실에 가보니 정 지휘자와 이날 총연출을 맡은 국립오페라단 관계자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찍 리허설을 마친 정명훈은 호랑이 눈을 뜨고 외벽 세트의 철거를 요구했다.

“내가 그동안 시향의 실력을 1년에 1%씩 올렸다면, 오늘 저 벽 때문에 3%가 날아갑니다."

그러나 오페라단 측은 “대통령 행사인데 지금 와서 철거할 시간이 없다. 그냥 하자."고 우겼다.

결국 내가 결론을 내려야 했다. 시각이냐, 청각이냐?

‘오늘 행사는 음악회다. 그렇다면 지휘자의 생각을 따라야 한다. 그 사람만큼 음향에 민감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1시간 뒤면 청중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더구나 오늘은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나라 VIP들이 총출동하는 날이다. 나는 청각을 택했다. 현장 담당자를 쳐다보았다.

“30분 내로 철거가 가능합니까?"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철거하세요."

오페라단 관계자가 펄쩍 뛰었다.

“아니, 지금 이 시간에 저걸 부수다 엉망이 돼버리면…."

만류하는 관계자를 나는 냉정하게 외면했다.

 

신년 첫 대형 대통령 행사이다 보니 경황이 없었다. 초청장이 급히 발송된 탓에 곳곳에서 경호와 의전 간의 마찰이 빚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상황을 수습하며 손님들의 입장을 독려했다.

오후 7시, 콘서트홀 리허설 룸에서 신년 인사회가 시작됐다. 7시 30분쯤 정명훈 지휘자로부터 또다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8시 음악회 시작을 30분 앞둔 상황이었다.

“오늘 마지막 곡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인데, 독일어 가사를 한국말로 옮긴 스크린 자막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공연할 때 서서히 내려주면 관중이 교향곡의 의미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런 걸 왜 진작 요청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준비하다 혹 실수라도 한다면…."

“과거에도 이런 요청을 했었는데 안 들어주더군요. 비서관님이면 들어주실 것 같아 말씀드리는 겁니다."

순간 그의 간절한 눈빛이 보였다. 즉시 예술의전당 관계자를 불렀다.

“30분 내에 되겠습니까?"

“네, 해보겠습니다."

 

드디어 오후 8시, 애국가를 필두로 서울시향의 신년음악회가 시작됐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9번, 베르디와 모차르트의 오페라 아리아가 이어지고 마침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환희의 송가)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장에서 무대 위로 서서히 내려오는 스크린. 거기에 적힌 가사 내용은 이러했다. 

위대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자여 / 진실된 우정을 얻은 자여 / 여성의 따뜻한 사랑을 얻은 자여 / 다함께 모여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

가사를 보면서 사람들은 더욱 감동했고 피날레는 멋있게 장식됐다. 앙코르로 ‘아리랑’이 나오고 모두가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서둘러 무대 뒤로 달려갔다. 대통령과 출연진의 뒤풀이 때문이었다. 정명훈 지휘자는 나를 보고 함박웃음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마쳤습니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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