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명훈을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봄이었다.
그때 나는 힘든 시절이었다. 22년 다니던 신문사를 하루 아침에 그만두고 나와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중년에 찾아온 내 자신과의 불화는 결국 나를 홀로 광야로 내몰았다. 당분간 나는 글쓰기를 제외하고는 외부와 절연한 채 지내기로 마음먹고 지내던 터였다.
서울시향 예술감독으로 막 취임한 정명훈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4월 말 도쿄로 향했다. 그를 만나기로 한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 홀로 향했다. 당시 도쿄 필하모니 음악감독도 맡고 있었던 정명훈은 이날 단원들과 함께 리허설을 할 예정이었다.
‘마에스트로(Maestro) 정’이라고도 불리는 정명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검은색 바지와 재킷, 그 속에 하얀 라운드 티셔츠를 입은 그의 복장은 심플했다.
“좀 더 부드럽게, 관대하게, 민감하게….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아주 강하게, 놀랄 정도로…."
쉬운 표현은 영어로 직접하고, 좀 더 자세한 표현은 일본인 통역이 해줬다. 순식간에 70여 명의 단원들은 ‘마에스트로 정’에게 집중했다. 정씨는 놀라운 카리스마로 각 파트의 연주를 차례로 지적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소리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이날 리허설을 마친 정 지휘자와 단원들은 다음 날인 4월 29일 정오 도쿄역에 모였다. 신칸센을 타고 일본의 유명한 산악 휴양지인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서 연주회를 갖기로 예정돼 있었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대화를 나눴다.
정명훈은 피아니스트로서 21세(1974년)에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등을 차지했고, 지휘자로서 36세(1989년)에 ‘프랑스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발탁돼 세계적인 음악가 반열에 올랐다. 사실 그의 유명세와 차가운 표정은 일견 그를 오만한 사람으로 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의외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었다.
“나 정도 재주를 가진 사람은 많습니다. 천재들이 한 발자국씩 성큼성큼 딛고 나간다면, 나는 굉장히 오래 걸려서 그 뒤를 쫓아갑니다."
그에게는 뉴욕 필하모닉의 전설적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 같은 이가 천재였다.
“나는 지휘 하나도 벅찬데 그분은 지휘뿐 아니라 피아노에 작곡까지 합니다. 나는 죽어라 연습해야 간신히 따라갑니다."
그는 ‘노력파’였다. 잠시도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가루이자와에 도착한 정씨는 바쁘게 움직였다. 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우고 곧바로 리허설로 들어갔다. 인터뷰는 도중 휴식시간에 이어졌다.
어렸을 적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리고 피아노 음 하나 틀리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였다. 늘 도달하기 어려운 아주 높은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향해 연주하면서, 한 번도 흡족하게 웃어본 적이 없을 만큼 자신을 혹독하게 다뤘다.
그러나 20대에 들어 지휘자로 전향한 후, 자신보다 오케스트라 전체를 생각하며 어둡고 고독한 음악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에 결혼이 더해지면서 그의 인생은 날개를 달았다. 정명훈의 부인은 다섯 살 연상의 구순열 씨로 원래 사돈 간이었다.
“결혼은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며 내 인생을 180도 바꿔 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모두 4번의 ‘기적’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아내와의 결혼이고 나머지는 세 아들을 낳았을 때라고 말했다(세상에!). 가정을 꾸려 나가면서 그는 자신을 재발견했다. 가족의 ‘조수’, ‘심부름꾼’ 역할을 하면서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났고, 살아가는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날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일찍 잠에 들었다.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창밖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대낮 햇빛처럼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찬란한 달빛을 접해본 지가 얼마나 됐는지…
나는 지난 50년 가까운 내 인생을 생각해보았다. 열심히는 산 것 같은데 이룬 것은 없고…. 이제 또 다시 새 출발해야 하는 자신이 한편 가엽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날 정명훈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내가 보기에는 이룰 것을 다 이룬 정명훈이 지금도 매일 자신을 채찍질하며 노력하고 있다는 고백을 되살리면서, 도대체 인생이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다 겨우 잠들었다. 산간지대의 밤은 로맨틱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