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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물 탐구

혁명가에서 휴머니스트로 변신, 박노해 시인 ①

와인을 좋아했던 무기수 박노해와의 인연

함영준  |  편집 명지예 기자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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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실상 폐지된 상태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까지 사형이 집행됐다. 28년 전 나는 감옥과 사형장을 둘러보고 사형수 이야기들을 취재해 보도했다. 기사가 나간 지 얼마 뒤(199112)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박노해 누난데요. 서울구치소에서 기자님의 기사를 읽고 한번 뵙고 싶다고 하네요."

순간 깜짝 놀랐다. 박노해가 누구인가. 현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의 새벽이란 시집을 통해 1980년대 한국 민주화와 노동운동을 주도한 상징적 인물.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7년간 수배를 받아오면서 사노맹(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을 결성, 우리 사회의 터부였던 사회주의 혁명을 꾀하다 검거돼 국가보안법위반죄(반국가단체 수괴)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골수 빨갱이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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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 반, 호기심 반으로 약속한 서울구치소 면회실로 갔다. 그런데 하필 주민등록증을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평소 알고 지내던 구치소장에게 연락해 면회를 부탁했다. 그게 화근이 됐다. 전 국민의 관심이 걸린 특급공안사범과 기자의 면회 자체에 비상이 걸리는 바람에 나는 쓸쓸히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봄 박노해는 대법원에서 무기수로 확정됐고 나는 해외 근무를 하면서 한동안 그를 잊었다.

 

달라진 박노해 와인 마시러 가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1998년 박노해는 8·15 광복절 특사로 7년간 수형생활을 마치고 풀려나왔다. 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절망·분노·증오의 언어로 이념과 투쟁을 선동하는 과거의 혁명가가 아니었다. 이미 감옥에서부터 정신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지켜가야 하지만 현실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잘못됐다"고 공언해 운동권·진보 세력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과 쇄신을 통해 희망·감사·사랑을 이야기하는 휴머니스트가 돼 있었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세요.
그러나 세상을 닮거나 따르지는 마세요.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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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욕망도 솔직하게 드러냈다. “나는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이 좋았고, 고급스럽고 세련된 옷이 좋았고,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가 좋았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고 유명해지고 힘있는 게 좋았다. 왜 나는 그 욕망을 떳떳이 긍정하지 못했을까."

당시 홍콩에 있던 나는 박노해의 변신을 보면서 저 사람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했다.

귀국한 나는 2002년 봄 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인사동 선술집에서 만났다. 그의 얼굴에서는 20년 넘는 거친 삶이나 투쟁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맑은 평화가 느껴졌다. 세속을 떠난 수도자 같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려는 순간 박노해가 말했다.

와인 마시러 가지 않겠어요?"

와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말을 박노해로부터 듣는 게 신기했다. 당시 와인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생소하고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술이었다. 문득 박노해를 만천하에 알려 준 노동의 새벽이란 시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그를 따라간 곳은 당시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히딩크 감독이 자주 간다는 삼청동 콩두라는 집이었다.(이 집은 이후 단골이 되었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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