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를 만난 이후 나는 그가 운영하는 나눔문화에 자주 찾아가 어울리곤 했다. 이곳에선 자급·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마을’, 빈민촌 아이들과 직접 농사 짓고 좋은 일을 하는 ‘나누는 학교’,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제3세계 사람들을 돕는 ‘글로벌 평화나눔’ 등 여러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나는 ‘나눔문화포럼’에 참여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저녁 때 모여 잡곡밥을 함께 먹고 각계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는 슬로 라이프(slow life)의 시간이었다. 강사로는 신해철(가수)·승효상(건축인)·임옥상(화가)·유홍준(미술평론가)·박원순(변호사)·송호근(사회학자)·김재철(기업인)·황병기(국악인)·김진현(언론인)·안철수(IT 기업인) 등이 나왔다. 재원은 회원들의 회비와 박노해 개인의 출판 인세 등으로 충당됐다.
당시는 노무현 정권하에서 우리 현대사에 대한 비판이 심할 때였다. 2005년 신문사를 나온 나는 사무실을 얻어 『한강의 기적』 등 우리 현대사를 긍정하는 내용의 책을 썼다. 출판기념회를 열 때 박노해와 나눔문화 친구들은 초대장을 만들고 음악 영상을 만들어주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세월이 다시 흘렀다. 나는 사는 일에 바빠 최근 수년간 박노해를 만나지 못했다. 그동안 박노해는 낡은 카메라와 오래된 만년필을 들고 아프리카·중동·아시아·중남미 등 세계 빈곤 지역과 분쟁 현장을 돌며 그들과 함께 지내며 나눈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전하고, 돕는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언젠가 인왕산 등산을 마친 후 부암동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박노해의 나눔문화 건물을 발견했다. 신문로에서 이사온 것이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박노해의 페루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해발 3000m 산속에서 잉카제국의 후예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박노해의 탁월한 예술적 감성과 영성(靈性)과 어우러져 생생히 나타나 있었다.
박노해의 근황을 물어 보니 최근 산속에 들어가 책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시나 에세이가 아니라 그동안 고민하고 사유해온 지구 평화와 나눔, 사랑에 대해 집약한 사상서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마치 오래된 친구 집에 온 편안함을 느꼈다. 전시장 옆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나는 박노해의 살아온 길을 더듬어 보았다.

어진 천성과 용기·열정 갖춘 박노해
그는 이제 더 이상 진보도 보수도 아닌, 제 3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인간의 기본을 건너뛰고 나라 경영에는 무능한 채 절대이 념에만 목청 높이는 진보 지식인"이나 “자기 먹고살 것은 물론 온갖 기득권·특권 다 누리며 도덕과 법 질서를 떠드는 보수 지식인"들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그는 한쪽에선 변절자요 전향자로, 다른 한쪽에선 위선자요 기회주의자로 배척당하기도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다.
그에게는 일관된 모습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약자 편이라는 사실이다. 가난하고 억압받고 불행한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은 아마도 그의 천성(天性)인 듯 싶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그는 그런 ‘사랑’의 마음으로 이라크·팔레스타인·레바논·쿠르디스탄·다르푸르·아체·인도·파키스탄·라오스·티베트·페루의 오지를 찾아가 때로는 목숨도 위협받는 극한 상황에서도 그들을 도와주는 평화·나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나는 그와 동시대를 살아왔지만 참으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어진 천성과 정직함, 용기와 열정을 좋아한다. 그가 최근 출간한 사진에세이 『다른 길』을 들춰보다 한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