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함영준의 인물 탐구

소신의 언론인 조갑제 ①

북한 기자들도 주목했던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

함영준  |  편집 명지예 기자  2019-05-31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198712, 민주화 이후 첫 대선을 앞두고 대한항공(KAL) 858 여객기가 공중 폭발해 탑승자 280여 명 전원이 사망했다이듬해 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첨예한 남북대결이 시작됐다. 뉴욕 특파원이었던 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공작원 김현희를 체포해 북한 소행임을 입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박길연 유엔대사는 한 해 전(1987) 일어난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 수많은 민주화 탄압 사례를 거론하면서 우리 측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 남조선 스파이 집단 두목을 지낸 이후락(전 중앙정보부장)이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1973년 박정희의 지시로 김대중을 일본에서 납치,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고 폭로했다."

내용이 왜곡된 이후락 증언의 충격파는 컸다. 서방국 대표단들의 표정도 곤혹스럽게 변했다. 마침내 박길연의 주장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여러분, 그 김대중을 죽이려던 괴수 박정희는 또 어떻게 됐나? 자기 부인은 동족의 손에 잃었고, 자신도 자기 오른 팔인 김재규 중정 두목 손에 암살되지 않았는가."

하도 한국 쪽의 아픈 데만 건드리는 통에, 어느새 사건의 본질은 희석되고 말았다

사실 북한 박길연이 인용한 월간조선의 이후락 인터뷰는 조갑제가 아니라 오효진 기자가 한 것이었다. 그런데 북한 측이 이를 조갑제 기자로 안 것은 당시 월간조선의 특종이나 폭로기사 상당 부분이 조갑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조갑제 기자는 그 시절 최고의 취재력을 과시하던 대한민국 대표기자였다. 박정희의 유신은 물론 5공 군부독재 정권의 실상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히로뽕-코리언 커넥션’,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부마사태와 10·26 사건의 내막’, ‘국가안전기획부’, ‘한국 내 미 CIA의 내막’, ‘주한 유엔군 사령부’, ‘전두환의 금맥과 인맥’, ‘공수부대의 광주사태등등.

88.JPG
1980년대 군부독재 정권의 내막을 파헤치며 명성을 날리던 조갑제 기자의 월간조선 편집국 시절 모습. (사진: 조갑제닷컴)

뉴욕에서 돌아온 이듬해(1989) 국방부를 담당하게 된 나는 판문점 군사정전 회담을 취재하러 갔다. 북한 기자단 대표인 민주조선 김상현 기자와도 인사를 나눴다. 그는 1960년대부터 판문점을 출입해 한국 사정을 훤히 꿰고 있었다. 내 집이 개포동"이라고 했더니 땅값 좀 올랐겠구먼"이라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때 북한 기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남조선 사람이 바로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였다. 북한 기자들은 그와 같은 신문사에 근무하는 나를 볼 때마다 우르르 몰려와 근황에 대해 물었다.(지금 생각해 봐도 웃음이 나오는 진풍경이다.)

조갑제, 어떤 사람이야?"

어떻게 그런 기사 쓸 수 있지?"

남산’(지금의 국정원이며 당시는 국가안전기획부) 아이들이 가만 놔두나?"

8군이니 CIA니 다 까발렸던데 양키들이 항의 안 해?"

내가 우리 이제 민주화되고 있잖아. 남산이 함부로 하던 시절은 지나갔어"라고 말해주면 북한 기자들은 부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당부했다.

조갑제 최고야. 안부 좀 전해줘."

북한 기자의 큰 형님격인 김상현은 나를 따로 불러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함 기자, 스파이(남파 간첩) 50명보다 조갑제 한 명이 더 나아."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무단 전재 및 배포 금지
더보기
함영준의 인물 탐구+ 더보기
내가 본 故 이건희 회장의 눈물
국정원장 내정자, 박지원의 인생 여정 좌익의 아들, 성공한 재미교포, DJ의 충신...
김정일 침실을 본 최초의 한국인 절제 없는 절대권력, 북한 최고 지도자의 민낯
북한에서 가장 좋아했던 대한민국 기자 “스파이 50명보다 나~!”
6.29 직전 ‘청와대 점령 쿠데타’ 준비한 장군 진짜 군인, 진짜 사나이 모습은 이렇다
"여론의 평가는 180도 달랐다" 소문 속 그의 진짜 모습은? 출소 후, 원한으로 남을 수 있던 관계를 역전하다
도박 미쳐 제자 유괴 살인후 1년 넘게 부모 협박 유복한 집안 명문대 ROTC출신의 두 얼굴
대통령 사생활 미끼로 미국 지배한 '밤의 대통령' 48년간 FBI국장 지낸 에드가 후버
문재인은 처칠인가, 챔벌레인인가? 코로나 위기에서 문재인 리더십
추미애의 '마이웨이'와 '잠 못이루는 밤' 과잉각성-완벽주의형
사람을 중히 여긴 신문인 방우영 ③ 현장 우선의 '밑바닥 체질'에 용병술도 뛰어나
사람을 중히 여긴 신문인 방우영 ② 34세에 조선일보 사장...3년만에 발행부수 2배로 늘려
사람을 중히 여긴 신문인 방우영 ① 파업 주도한 노조도 포용했던 사주
'CEO형 대학 총장' 어윤대 ③ 추진력 뛰어나지만 '독단적'이라는 비판도 받아
'CEO형 대학 총장' 어윤대 ② 반발 무릅쓰고 국내 대학 최초로 영어 상용화
'CEO형 대학 총장' 어윤대 ① 막걸리 대신 와인... '민족 고대' 글로벌화 앞장
인기보다 정공법 택한 김대중 ③ "DJ와 박정희, 한강의 기적 이룬 환상의 파트너"
인기보다 정공법 택한 김대중 ② 측근의 권력 남용으로 도래한 '암(暗)'의 시대
인기보다 정공법 택한 김대중 ① 97 외환위기 때 발휘된 DJ 리더십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됐던 YS ③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오기가 더 어렵다"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됐던 YS ② 임박한 국가 부도 모른 채 허세 부려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됐던 YS ① 승부사 기질 발휘했던 그의 '역사 바로세우기'
소신따라 행동한 FM 군인 민병돈 ③ 장군 시절 부하의 라면집 개업 축하하러 가던 모습
소신따라 행동한 FM 군인 민병돈 ② 6·29 직전 쿠데타까지 각오하고 진압작전 저지
소신따라 행동한 FM 군인 민병돈 ① 노태우 대통령 북방정책을 면전에서 비판
혁명가에서 휴머니스트로 변신, 박노해 시인 ③ 분쟁지역 사진 찍는 그의 일관성은 '약자의 편'
혁명가에서 휴머니스트로 변신, 박노해 시인 ② 박노해의 생각을 바꾼 어느 여성 노동자의 한 마디
혁명가에서 휴머니스트로 변신, 박노해 시인 ① 와인을 좋아했던 무기수 박노해와의 인연
소신의 언론인 조갑제 ② 소신을 위해 미칠 줄 아는 사람
소신의 언론인 조갑제 ① 북한 기자들도 주목했던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
노무현과 용서 ③ 용서는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것
노무현과 용서 ② 대의를 위해 희생할 줄 알았던 정치인
노무현과 용서 ① '노무현 변호사 영장 4차례 기각' 단독 취재
인권변호사 조영래 ② 조용히 세상을 바꿔가던 온유한 모습 생생
인권 변호사 조영래 ① 폐암으로 43세에 타개...나와는 '동지적' 관계
내가 만난 지휘자 정명훈 ③ 바깥 삶은 '알레그로', 안쪽 삶은 '안단테'
내가 만난 지휘자 정명훈② “결혼은 생애 최고의 행운이고 기적"
내가 만난 지휘자 정명훈① 대통령 앞 공연 3시간 전, 세트 철거 요구
80년대 조폭의 상징 김태촌② 경찰서 유치장에서의 단독 인터뷰
80년대 조폭의 상징 김태촌③ 우리 마음 속의 폭력성..."김태촌과 공범 관계"
80년대 조폭의 상징 김태촌① 인간 내면의 폭력성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김훈의 무언의 울림 3 "나는 '단독자'의 삶을 즐긴다"
김훈의 무언의 울림 2 나이 오십에 경찰서 출입기자가 되다
김훈의 무언의 울림 1 'Show, Don’t Tell(말하지 않되 그대로 보여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