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대통령 앞에서 북방정책 비난
1989년 3월 21일 육사 제45기 졸업식. 민병돈 교장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경례도 하지 않은 채 식사(式辭)를 통해 노대통령의 북방정책 및 대북 유화 기조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기도 하며, 적성국과 우방국이 어느 나라인지도 기억에서 지워버리려는, 매우 해괴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직 육군 중장의 이 발언은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켰다. 민주화 추진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군부 강경세력의 집단 반발로 인식됐다.
민병돈은 신군부 핵심세력인 ‘하나회’ 출신의 육사 15기 대표 주자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인물. 강직하고 소신이 강한 무장(武將)이란 평과, 상관도 못 말리는 독선적 인물이란 평이 엇갈렸다. 결국 민 교장은 스스로 사의를 표한 뒤 군복을 벗었다.
몇 달 뒤 나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의외로 동네 아저씨 같이 순박하고 수수한 모습이었다. 그는 졸업식 당시 자기 행동에 대해 밝혔다. “대통령이 ‘북한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해 전방 군인들이 혼란에 빠졌다. 주적이 북한이 아니라면 왜 엄동설한에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 나는 이런 여론을 직접 전하고 싶었다."
군 주변에서 민병돈은 ‘민따로’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대세나 관행에 따르지 않고 ‘따로’ 행동함으로써 사서 고생한다는 뜻이다. 확실히 그의 군 생활을 보면 그런 소리를 들을 만 했다. 상명하복(上命下服)과 위계질서가 투철한 군대에서 그는 소신에 따른 ‘특이한’ 행동을 많이 했다.
1960년대 군에는 식량과 군용품을 빼돌려 팔아먹는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초급장교 시절부터 그는 상관에게 이를 지적하고 항의했다. ‘상납’을 하지도받지도 않았다. 선거 때가 오면 공개적으로 여당 후보를 찍는 부정선거가 자행됐다.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찍는 것"이라며 부대원들의 비밀투표를 독려했다.
부대원에 방탄복 입히고 실탄 사격훈련
민병돈은 전형적인 ‘FM(Field Manual·야전교범) 군인’이었다. 특전사 대대장 시절, 작전에 나가면 ‘폼나는’ 지휘관 텐트를 마다하고 허름한 사병 텐트 속에서 함께 뒹굴었다. 지휘관이 적에게 노출되면 안 된다는 교리를 철저히 지킨 것이다.
훈련도 실전을 방불케 혹독하게 실시했다. 특전사령관 시절 88서울올림픽 테러에 대비, 즉응력(卽應力)을 기른다는 명분하에 부대원들 상호 간에 방탄복을 입히고 실탄 조준 사격을 하게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민따로’의 원칙주의는 1985년 2·12 총선 때 빛을 발한다. 당시 연금에서 풀려난 YS와 DJ 등 민주화 세력이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자 전두환 정권은 총력전으로 맞섰다. 그러나 수도권 20사단장으로 근무하던 민병돈 소장은 평소 소신대로 ‘부정 선거’를 거부했다. 군에서는 난리가 났다.
원래 20사단장은 수방사령관(중장)으로 영전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그러나 민병돈은 준장 보직(육본 정보참모부차장)으로 좌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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