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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물 탐구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됐던 YS ②

임박한 국가 부도 모른 채 허세 부려

함영준  |  편집 명지예 기자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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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홍콩특파원 발령을 받아 현지로 떠나기 며칠 전인 1997111일.한보 부도 위기설이 크게 보도됐다. 19936000억원이던 한보철강 부채가 1996년말 4조원을 넘어섰고, 부채비율은 자기자본(2000억여원)의 무려 20배를 초과했다. 이런 터무니 없는 대출이나 재무 상태는 사상 유례가 없었다. 그날로부터 12일 후인 123, 한보철강은 5조원의 부채를 지고 도산했다.

홍콩에 부임한 나는 외국 언론들이 연일 한보사건을 집중 보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훗날 깨닫게 된 것이지만 한보사건은 한국의 정경유착과 관치에 길들여진 부도덕한 금융 실태를 낱낱이 노출시켜 세계 투자가들이 한국에서 손을 떼도록 만든 기폭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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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홍콩에 진출한 한국 금융기관들은 흥청망청이었다. 소위 YS세계화 정책에 따라 국제금융에 대한 고삐가 풀리면서 무려 83개 금융사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이들은 선진국 수준의 체재비와 판공비를 썼지만 영업활동은 후진적이었다. 동남아· 남미· 러시아 등의 고수익·고위험 정크 본드(junk bond)를 거래하고 있었다.

한보사건 이후 한국 경제는 외국 언론에 거의 엉망 수준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3월 들어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에 대한 비리 수사가 집중 보도됐다.

4월 중순 홍콩 외신기자클럽(FCC)에 들렀을 때 나는 외국 기자들의 빗발치는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처벌한 현직 대통령 측이 또 다른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실이 맞나?"(키스 리치버그·워싱턴포스트) “뇌물의 단위가 너무 크다. 개인이 받는 돈이 수십만, 수백만달러라니."(리처드 맥그리거·디 오스트레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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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이후 아시아 각국의 독재와 금융 부실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이미 한국에 빌려준 돈의 회수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은 돈이 마르고 도산이 시작됐다.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다음날인 199772, 태국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동남아 전역으로 금융위기가 번져 나갔고 8월 하순에는 홍콩마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세계적 위기에도 한국은 오불관언이었다. YS는 아들 현철씨가 구속된 이후 사실상 식물 대통령이 돼 보이지 않았고, 여론은 이회창 아들 병역 문제에 올인하고 있었다. 내가 홍콩에서 아무리 외환위기 기사를 송고해도 국민들의 관심은 오로지 대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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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더욱 한심했다. 9월 홍콩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 온 강경식 경제 부총리는 한국 경제력에 걸맞는 분담금을 내겠다"며 오히려 IMF 회비 증액 로비에 열중했다. 불과 2개월 뒤 국가부도 위기를 맞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그와 인터뷰를 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레이 배시포드 경제부장은 일국의 경제 총수가 어쩌면 그렇게 상황을 모를 수 있나"며 한탄했다. 당시 IMF 총회에는 미국의 큰 손조지 소로스도 참석했다. 그는 일본 관리들에게 금융위기 다음 타깃은 한국"이라고 귀띔했다.

10월 말 한국 주가는 결국 500선이 붕괴됐다. 11월 들어 세계 유수 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국이 위험하다고 연일 보도했지만 우리 정부는 전혀 대응을 못했다. 오히려 관리들은 YS 임기 중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겠다며 외환보유고를 바닥상태까지 끌고 갔다. 마침내 우리 외환시장과 증시가 붕괴 상황에 이른 1121일 저녁,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했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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