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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물 탐구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됐던 YS ③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오기가 더 어렵다"

함영준  |  편집 명지예 기자  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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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내 편이라는 자신감이 독

1997년 후반기는 그동안 한국인들이 피땀 흘려 쌓아온 한강의 기적이 일순간 거덜나게 될 수도 있었던,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가장 위험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훗날 정부 조사에서 밝혀진 것처럼 YS가 외환위기를 처음 파악한 것은 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1110일 한 국회의원(홍재형)과의 전화 통화에서였다. 국가적 위기 사태를 맞아 통치자는 무지했고, 그런 징후를 보고한 부하도 없었다. 나라는 표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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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YS20대 의원 시절부터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았던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의리와 정이 있었고, 국민의 마음을 읽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야당 투사였다. 그런 그가 왜 대통령 후반기 때 그런 실정(失政)을 하며 추락하게 됐는가. 국가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돌려선 안 되지만 외환 위기에 관한 한 YS의 책임은 크다. 그는 측근들과 한보 사이의 유착을 제어하지 못했고, ‘세계화란 명목 하에 세심한 고려 없이 자본시장을 덜컥 개방해버렸을 뿐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엄청난 국력을 소모했다. 그 와중에 한국 경제가 곪고 썩어 들어가는 것을 아무도 주목하지 못했다.

사실 야당투사로서 비판과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은 전혀 다른 세계다. 박정희가 그 어려운 시절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며 시대적 악역을 자처하고 좁은 길을 헤쳐 나갔던 것과 달리, YS는 거칠 것이 없는 탄탄대로의 넓은 길(大道無門)을 걸어갔다. 누구보다 군사정권으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은 DJ(김대중)지만 대통령이 된 뒤 꾹 참고 보복을 하지 않은 것과 달리 YS는 군사정권과 손을 잡고 집권하고서도 한 순간에 그들을 내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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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YS의 그 같은 과단성, 즉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처럼 인고의 세월을 살아오지 않았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나 명문교를 졸업하고 승승장구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다 됐고, 하늘은 항상 자기 편이라고 자신(自信)했을 성 싶다.

그러나 그 자신감이 결국 대통령이 된 뒤 국정 운영에는 독()이 되고 말았다. 어느새 마음 속에는 국민을 섬기는겸손보다 내가 최고라는 교만이 자리 잡아 위기를 위기로 보지 못하고, 주위의 판단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반복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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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힐러리 경(왼쪽)은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하고 영웅이 됐지만 평생 네팔에서 봉사하다 타계했다.

등산을 즐긴 YS산은 오르기보다 내려오기가 더 어렵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그는 대통령이란 인생 최고 목표를 이루고 하산하다가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인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의 말이 생각난다.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하고 영웅이 됐지만 평생 후진국 네팔에서 봉사하다가 타계한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에베레스트에 오른 첫 인간이라는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 등정을 통해 겸손과 관용을 배웠다는 점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YS가 저 힐러리경()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또 우리 각자의 인생은. 외환 위기가 한국 사회에 너무 많은 상처와 그늘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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