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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물 탐구

'CEO형 대학 총장' 어윤대 ②

반발 무릅쓰고 국내 대학 최초로 영어 상용화

함영준  |  편집 명지예 기자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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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는 국내 대학 중에서 영어 상용화를 가장 먼저 선언했다. 일반 교과목 강의 상당수를 영어로만 하고 외국인을 정식 교수로 채용했다. 학내의 반발은 엄청났다.

민족 고대가 왜 영어 공용론을 들고 나오나?", 영어로 하면 강의 질이 떨어진다."

그러나 어 총장은 끄떡하지 않았다. 도리어 국어국문학과 교수들에게 영어 강의가 어려우면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라"고 했다.

한국학이 전 세계에 확산되려면 영어를 통해 외국인들이 쉽게 한국을 배우도록 만들어야 한다."

2004년부터 본격화된 영어 강의 비율은 1학기 17.9%, 2학기 21.9%로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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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의 두 번째가 해외 거점대학 구축이었다. 고려대생 2000명이 매년 외국에 교환 학생으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면 미국·영국·중국·호주 등의 대학들과 협정을 맺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보다 비싼 학비, 기숙사 확보, 안전 문제 등 고려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상대 학교도 한국에 같은 규모로 학생들을 보낼 수 있느냐는 것도 관건이었다.

어 총장 이하 대학 간부들이 직접 현지 대학을 방문해 설득했다. 처음에는 “25000달러 등록금을 내지 않으면 못 받겠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던 미국 UC데이비스대를 비롯 영국 런던대, 중국 린민(人民), 호주 그리피스대 등이 결국 교류를 수락하면서 협정에는 속도가 붙었다.

보직 교수에 힘 실어주며 대학 개혁

교육은 돈이다.’ 이 모든 것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당시 고려대의 발전기금은 하버드대(28조원)1%(2800억원) 수준에도 못 미쳤다.

어윤대는 평일 하루 4시간 이상씩 발전기금을 모으기 위해 발로 뛰었다. 한번 아니라 보통 서너 번씩 찾아가 11로 만났다. 주말이면 골프 등을 치며 기업인들에게 호소했다.

그는 대학 행정은 부총장 이하 보직 교수들에게 맡겼다. 이른바 대학에 기업처럼 목표관리제를 도입한 것이다. 대학 안 살림은 부총장 이하 단과 대학장 및 보직 교수들이 책임졌다. 어 총장은 부총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중요 사항의 경우 직접 부총장실로 찾아가 만났다. 4년 내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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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어 총장에게는 자기 사람이 없었다. 취임 후 그는 전임총장 시절 사람들을 거의 유임시켰다. 업무 연속성 때문이었다. 임기가 끝났으나 잘했다고 평가되면 유임시켰다. 새로 선발하는 사람도 철저히 평판과 능력에 의해 임명했다. 상당수 보직교수가 어 총장과 단둘이 식사 한 번 한 적 없는 사이였다.

보수성이 강하기로 소문난 고려대학교 내의 이런 변화는 화제가 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고대는 혁명중이라고 보도했다.

200511월 영국 더 타임스가 선정하는 세계 200대 대학에서 고대가 사회과학분야는 66, 인문분야는 89위에 랭크됐다. 전체 순위는 184위였다. 고려대가 아시아 사립대학으로는 최초로 일본 명문 와세다대까지 제치고 종합랭킹 세계 200위권 안에 진입한 것이었다.

국제적 지명도가 높아지자 외국 대학들이 제 발로 찾아 왔다. 과거 교류에 난색을 표하던 싱가포르 국립대(세계 22·2005) 시춘퐁 총장이 교류 협력을 먼저 제의했다. 이렇게 해서 2006년 싱가포르대와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72)대 등 3개 대학 간 교류협력사업이 시작됐다.

기금은 계속 늘어났고 학교 인프라 확충도 절정에 달했다. 2006년에는 세계 150위 대학이 되었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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