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국내 대학들 고대 벤치 마킹
학교 내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개혁에 따른 교수들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여기에는 어 총장의 직선적인 언행과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도 작용했다.
“너무 급하고 일방적이다."
“소통은 없고 독단적으로 처리한다."
2006년 11월 치러진 제 16대 총장 선거에서 어 총장은 재선에 실패했다. 교수들의 ‘네거티브’ 인식이 작용했다. 언론에서는 ‘어 총장의 실패한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개혁에는 성공했으나 구성원의 반발에 부딪혀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3년 10개월 재임 중 국제화는 많이 이뤄졌다. 영어 강의는 35%로 늘어났고 한해 1700명의 학생이 외국에 교환학생으로 나갔다. 국제하계대학의 경우 취임 전 불과 20명에 불과하던 구미지역 대학생 참가자는 1500명을 넘겼다. 학생 파견 프로그램은 총 56개국 596개 대학 및 기관으로 확대됐다.
학교 발전기금은 연구비 포함 4700억 원을 모았다. 4년간 320명 신임교수가 채용돼 30% 늘어났고, 교수 연구 논문도 배로 증가했다. 기존 20만 평 대비 8만 평(40%)의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어윤대가 추진한 많은 개혁·발전 조치를 대부분의 국내 대학들이 벤치마킹해 따라갔다는 사실이었다.

추진력 뛰어나고 용인술에도 정통
그에게는 어쨌든 ‘MB 맨’이라는 정치적 시각이 따라다닌다. 이명박 대통령와 친한 대학 후배였기 때문이다.
그는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외국계 ING 생명 인수 등을 시도했으나 결국 좌초하고 말았다. 사외 이사들은 물론 회사 임직원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3년 임기를 채우고 2013년 7월 물러났지만 적지 않은 구설수에 시달려야 했다.
어윤대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가 조직에 필요한 비전을 제시하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쓸 줄 아는 용병술이 있으며, 성과를 이뤄나가는 추진력의 소유자라고 평한다.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그가 독선적이고, 성과와 효율만을 중시하는 냉혹한 결과주의자라고 비판한다. 학자 출신으로서 자리를 지나치게 추구한다는 시각도 있다.
30년 넘게 어윤대를 지켜 본 나로서는 그가 조직의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CEO형 리더십의 소유자라는데 동의한다.
그에게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위해 설령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매진해나가는 열정이 있다. 아마도 그 열정이 그를 단순히 상아탑 내 학자로만 머물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팔을 걷어붙여 일하게끔 만들었다고 본다.
과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런 열정의 소유자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원만하고, 관계와 절차를 중시하며, 적당히 타협하는 사람들이 각광받는다. 그런 시대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