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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물 탐구

사람을 중히 여긴 신문인 방우영 ②

34세에 조선일보 사장...3년만에 발행부수 2배로 늘려

함영준  |  편집 명지예 기자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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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우 솔직담백한 성격이었다. 에두르는 표현이나 이중적인 자세가 없었다. 내가 홍콩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2년쯤 지났을 때, 내가 언론계 친목단체인 관훈 클럽에서 주는 외신기자 보도부문상을 수상했다. 그 무렵, 방 회장이 처음으로 내게 사적인 이야기를 했다.

함 차장, 내가 자네 부친을 아네."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아버지는 <동양통신> 기자로 활동하시다 1957년 사고로 돌아가셨다. <조선일보>에선 방 회장의 사촌형인 고() 방낙영 씨와 국방부 출입을 같이해 친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방 회장과 아는 사이라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내가 용돈도 받아 쓴 적이 있었지. 자네 부친이 좀 걸걸하셨어."

방 회장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과거를 회고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방 회장이 내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이후 방 회장은 자신의 기자 생활을 얘기해주었고, 우리는 자연스레 사적인 대화를 나누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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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2016년 1월 22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미수(米壽·88세) 문집 출판기념회에서 책 '신문인 방우영'(21세기북스)을 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방우영은 196234세 나이에 사실상 <조선일보> 경영을 맡게 됐다. 당시 <조선일보> 발행 부수는 10만 부도 안돼 <동아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에 뒤지는 4위였다. 뿐만 아니라 신문사는 지금 돈으로 따지면 수백억 원의 빚더미에 쌓여 있었다. 그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사원들에게 월급을 제 때 주는 것이었다. 걸핏하면 대출 융자금을 회수하겠다고 협박하는 군사정권으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해야 했다.

그는 신문사 경영을 밑바닥 현장에서부터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낮에는 업무국, 공무국의 여러 부서들을 두루 돌아다녔고, 저녁 마감이 끝나면 편집국에 들러 기자들과 어울렸다. 밤이 되면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야근을 했다. 새벽 시내판이 나오면 지프차를 타고 서울 시내 보급소를 순회했다. 거기서 보급소장과 배달 소년들로부터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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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기존 서울 보급소장의 절반을 교체했다. 대신 보급소에서 일하는 똑똑한 총무들을 수소문해 성공하면 보급소장 시켜줄 테니 뛰어라"고 약속했다. 희망을 갖게 된 젊은 총무들이 이를 악물고 판매 부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광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 그는 머리 좋고 뛰어난 기자들을 설득해 광고 업무를 맡겼고, 스스로도 광고 유치에 나섰다. 아침 신문 배달을 위해 그는 군으로부터 군용 지프차 6대를 불하받아 발송 업무에 투입했다. 이런 피나는 노력으로 <조선일보> 발행 부수는 그가 경영을 맡은 지 불과 3년 만인 1965년에전보다 2배가 넘는 20만 부를 돌파했다.

신문사의 재정을 확충해 나가면서 그는 인재 영업에 박차를 가했다. ‘1등 하는 사람들 데려다가 1등 대접을 하면 1등 신문은 저절로 된다.’ 그런 정신으로 좋은 기자들을 스카우트해오고, 동종 업계에서 최고의 월급을 주었으며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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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군사정권은 기사의 논조가 마음에 안 들면 걸핏하면 기자를 연행해 혼을 내주거나, 사주에게 돈줄을 끊겠다고 협박하곤 했다. 1968년 김형욱이 중앙정보부장으로 있던 시절에는 기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정보부가 있는 남산에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이럴 때면 방 사장이 쫓아가서 애걸복걸해서 기자들을 데리고 나오곤 했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뒤 정부의 보도통제가 더욱 심해지자 당시 선우휘 주필은 혼자 책임질 요량으로 밤에 홀로 나와 윤전기를 세우고 사설을 교체했다. 이튿날 아침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설이 나가자 세상은 발칵 뒤집혔고 주필은 사직서를 내고 잠적해버렸다.

하지만 방 사장은 이 문제를 불문에 붙였다. 얼마 후 복귀한 선우 주필이 방 사장에게 용서를 구한 뒤 물었다. “만약 제가 사장님께 사설을 교체하겠다고 먼저 양해를 구했다면 들어주셨겠습니까?" 방 사장의 답은 명쾌했다. “아니오. 못 나가도록 막았을 겁니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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