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까지 군은 우리나라 ‘최고 실세’였다. 1987년 6·29 선언으로 26년간의 군사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시작됐지만 국가안보라는 명분에 따라 그들의 안하무인도 계속되고 있었다.
1989년 3월 21일, 태릉 육사 연병장. 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45기 육군사관생도 졸업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이날 민병돈 육사교장은 노대통령 앞에서 노 대통령이 집권한 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북방정책 및 대북 유화 기조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가치관의 혼란이 일어나고, 환상과 착각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기도 하며, 적성국과 우방국이 어느 나라인지도 기억에서 지워버리려는, 매우 해괴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현직 육군 중장의 이날 행동은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켰다. 민주화 추진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군부 강경세력의 집단반발로 인식됐다. 결국 민병돈은 전역했다.
그는 ‘하나회’ 출신의 육사 15기 대표 주자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다. “강직하고 소신이 강한 무장武將"이란 평과, “상관도 못 말리는 독선적 인물"이란 평이 엇갈렸다.
그의 별명은 ‘민따로’.
대세나 관행 안 따르고 ‘소신’따라 행동했다.
당시 군내에서 부정부패가 있었는데 ‘상납’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부정선거 거부하고 자유 투표 독려했으며 군대내 불필요한 형식을 배격했다.
전형적인 ‘FM(Field Manual, 야전교범) 군인’으로 군대 내에 만연해 있는 불필요한 형식과 절차를 배격했다. 한번은 지휘관 시절 퇴근 후 밖에서 식사를 하다 부대 내에서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둘러 부대로 복귀하는데 정문 위병 근무자가 평소 습관대로 “근무 중 이상 무!"라고 외쳤다. 당장 민병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럴 때는 ‘근무 중 불이 났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훈련도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혹독하게 실시했다. 특전사령관 시절 88 서울올림픽 테러에 대비, 즉응력卽應力을 기른다는 명분하에 부대원들 상호 간에 방탄복을 입혀놓고 실탄 조준 사격을 하게 한 것은 지금도 군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모두들 주저했다. 동료를 겨냥, 사격할 수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때 민병돈 사령관이 나섰다. 직접 방탄복을 입고 부대원들 앞에 섰다.
“먼저 나를 쏴라!"결국 사령관이 ‘총알받이’를 자천함으로써 훈련이 시작될 수 있었다.
여차하면 청와대 점령계획까지 세워
1987년 6월 중순, 전국은 폭풍 전야였다. 6·10 항쟁을 계기로 전국이 준準 소요상태로 접어들었다. 전두환 정권은 강경진압을 계획했다. 드디어 6월 19일 육군참모총장 발發 ‘작전명령 제87-4호’가 떨어졌다.
휴전선을 담당한 전투부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전군을 소요진압 작전에 대비하도록 하고, 전국에 비상계엄 사령부를 설치?운용하며 필요 시 발포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상황은 급박해졌다. 이제 대통령이 한 마디만 하면 ‘전군 출동→유혈충돌→무력진압→내전상태’로 번질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당시 특전사령관이던 민병돈은 즉시 육사 동기인 고명승 보안사령관을 만났다.
“군이 출동하면 다 망한다. 자네가 각하를 만나 명령 취소를 건의하게. 만약 누가 대표자냐고 묻는다면 내 이름을 대게."
민병돈은 만약 대통령이 건의를 무시한다면 즉시 휘하 707대대로 청와대를 점령하는 쿠데타를 감행할 계획이었다. 총 7개 여단으로 구성돼 있는 특전사 내에서 707대대는 정예중의 정예로 미국 델타 포스(Delta Force, 대테러특수임무부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민 사령관은 대대장을 이미 청와대로 보내 정찰을 시키는 등 도상 연습을 마쳤다. 만약 실제 거사가 이뤄질 경우 방송으로 나갈 대국민 성명서도 작성한 상태다. 당시 가까운 후배들로 이뤄진 수도권 부대 지휘관들의 동조도 자신했다.
‘문제는 대통령과의 의리다. 그러나 대한민국 장군으로서, 특전사령관으로서 개인적 인간관계보다는 국가와 국민의 안전이 먼저다.’
그는 실패할 경우 총살이나 자결을 각오했다.
고명승 보안사령관이 전 대통령을 만났다.
“각하, 군 출동 명령을 재고해달라는 군내 여론이 높습니다."“누가 주도하는가?"“민병돈 특전사령관입니다."“뭐야? 민병돈이…?"
순간 전 대통령의 얼굴에 뜻 모를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알았어. 가봐."
전 대통령도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민심을 전해 듣고 있었다. 최우방인 레이건 미국 정부의 우려도 전해들은 바 있다. 작전 명령은 사실 ‘엄포용’이었다. 그리고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민병돈의 사람됨을 알고 있었다.염려하던 군 출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며칠 뒤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역사적인 ‘6·29 선언’이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