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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탐구

북한에서 가장 좋아했던 대한민국 기자

“스파이 50명보다 나~!”

지금부터 30년전 북한에서 가장 좋아하던 신문이 조선일보, 가장 좋아하던 기자가 조갑제였다. 심지어 북한의 판문점 출입기자 단장은 당시 판문점 출입하던 내게 조갑제 기사가 자기네 간첩 50명 활동보다 낫다고 찬사를 늘어놓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지금 조갑제는 북한으로부터 가장 싫어하는 기자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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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평판을 중요시한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신경 쓴다. 그러나 평판은 객관적 사실fact보다 주관적 의견opinion에 더 좌우된다. 내 편이냐 아니냐, 내게 유리한가 아닌가로 결정된다. 평판은 이성적이지 못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과거 북한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기까지 했던 남조선 기자가 있었다. 1987년 12월, 대한항공 858 여객기가 공중 폭발했다. 탑승자 280여 명 전원이 사망했다. 다행히 기내에 폭발물을 설치한 공작원 김현희를 체포해 북한 소행임을 입증할 수 있었다.

이듬해 2월 노태우의 6공 정부 출범을 앞두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문제의 858기 폭발사건을 놓고 첨예한 남북대결이 시작됐다. 

뉴욕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는 유엔본부로 가 취재했다. 15개 이사국이 참여하는 안보리 분위기는 우리 측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북한 공작원의 테러를 입증하는 각종 증거자료가 속속 제시됐다. 이때 북한 박길연 유엔대사의 발언이 시작됐다.

“남조선 군부파쇼 집단은 자기들이 저질러놓은 일을 모두 우리에게 덮어씌운다. 작년(1987년) 초 서울대생 박종철 군을 누가 죽였나? 바로 남조선 괴뢰경찰이 물고문으로 죽였다. 그들은 수많은 민주인사 학생들을 투옥하고 고문하고 간첩으로 조작했다…."

그는 북한 공작원의 여객기 폭파라는 사건의 본질과는 관계없이, 한국의 군사독재 상황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끌고 갔다. 

“지난 1980년 민주화를 바라는 광주의 애국시민·학생들을 살육하고 정권을 강탈한 무리들이 누구인가? 지금 전두환 괴뢰도당 아닌가…."

박길연은 민주화 운동 탄압 사례를 교묘히 조합하면서 이 사건이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회의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남조선 스파이 집단 두목을 지낸 이후락(전 중앙정보부장)이 <월간 조선> 조갑제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1973년 박정희의 지시로 김대중을 일본에서 납치,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고 폭로했다…."

내용이 왜곡된 ‘이후락 증언’의 충격파는 컸다. 서방국 대표단들의 표정도 곤혹스럽게 변했다. 마침내 박길연의 주장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여러분, 그 김대중을 죽이려던 괴수 박정희는 또 어떻게 됐나? 자기 부인은 동족(재일교포 문세광)의 손에 잃었고, 자신도 오른 팔인 중정 두목 김재규  손에 암살되지 않았는가…."

하도 한국 쪽의 아픈 데만 건드리는 통에, 어느새 사건의 본질은 없어지고 분단된 약소국 내부의 험담이 난무하는 토론장으로 변해버렸다.사실 북한 박길연이 인용한 <월간 조선>의 이후락 인터뷰는 조갑제가 아니라 오효진 기자가 한 것이었다. 그런데 북한 측이 이를 조갑제 기자로 착각한 것은 당시 <월간 조선>의 특종이나 폭로기사 상당 부분이 조갑제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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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시절 최고의 취재력을 과시하던 대한민국 ‘대표’ 기자였다. 1971년 부산 <국제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조갑제는 두 차례나 해직을 당하고 이후 <월간 조선> 기자를 거치면서 박정희의 유신은 물론 5공 군부독재 정권의 실상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포항 석유 경제성 없다’, ‘히로뽕-코리언 커넥션’,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 ‘부마사태와 10·26 사건의 내막’, ‘공수부대의 광주사태’, ‘국가안전기획부’, ‘한국 내 미 CIA의 내막’, ‘주한 유엔군 사령부’, ‘전두환의 금맥과 인맥’ 등등….

특히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자, 휴가원을 내고 홀로 광주로 들어가 그 험한 상황을 샅샅이 취재한 뒤 5년 뒤인 1985년 <월간 조선>에 발표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야당과 재야, 운동권 세력은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뉴욕에서 돌아온 이듬해(1989년) 국방부를 담당하게 된 나는 판문점 군사정전 회담을 취재하러 갔다. 관례에 따라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기자단 대표에게 ‘신고식’을 했다. 상대는 북한 정부기관지 <민주조선> 기자인 김상현. 

그는 자기 이름이 김대중의 측근이었던 김상현 의원과 권투 세계챔피언을 지낸 김상현과 같다며 껄껄 웃었다.

1960년대부터 판문점에 출입했던 그는, 당시 함께 출입했던 조선일보 선배 기자들의 면면을 줄줄이 꾀고 있었다.

“용태(김용태, 국회의원·내무장관 역임)는 국회의원 잘 하고 있나?"

“도형(이도형, 주일특파원ㆍ논설위원 역임)이 글 열심히 쓰대"

김상현은 우리 내부 사정에도 해박했다. 집이 어디냐고 묻기에 ‘개포동’이라고 했더니 “땅값 좀 올랐겠구먼." 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당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아파트 값이 뛰어오르던 시절이었다.

북한 기자들과의 관계는 괜찮았다. 내 집안이 이북 출신인 데다, <조선일보> 기자란 점도 작용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조선일보>는 북한 기자들에게 호의적으로 인식됐었다. 똑같이 ‘조선’이란 단어를 쓰는 데다 조선일보 사주인 방씨 일가가 평북 정주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한 북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남조선 신문하면 전라도 부르주아가 만드는 <동아일보>보다 리북 사람들이 만드는 <조선일보>가 최고지."

당시 북한 기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남조선 기자가 바로 <월간 조선>의 조갑제였다. 북한 기자들은 그와 같은 신문사에 근무하는 나를 볼 때마다 우르르 몰려와 근황에 대해 물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웃음이 나오는 진풍경이다.    <판문점 북한군 경비단장 김철대좌 사진>

“조갑제는 어떤 사람이야?"

“어떻게 그런 기사 쓸 수 있지?"

“거 ‘남산’(지금의 국정원이며 당시는 국가안전기획부) 아이들이 가만 놔두나?"

“미 8군이니 CIA니 다 까발렸던데 양키들이 항의 안 해?"

전두환 독재정권에서 통제받던 언론은 노태우 정권으로 바뀌면서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때였다. 내가 “우리 이제 민주화되고 있잖아. 남산이 함부로 하던 시절은 지나갔어." 하고 말해주면 북한 기자들은 부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당부했다.

“조갑제 최고야. 안부 좀 전해줘…."

북한 기자의 ‘큰 형님’ 격인 김상현은 나를 따로 불러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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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기자, 스파이(남파 간첩) 50명보다 조갑제 한 명이 더 나아…."

1989년 말 동구권 붕괴 이후 가난한 중국 옌볜 동포들이 우리나라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북한의 처참한 생활상이 속속 전해지기 시작했다. 조갑제 기자는 이들 보따리장수의 북한 여행기를 다룬 ‘목탄차로 달리는 공화국’(<월간 조선> 1990년 12월호)을 기획하면서 그 실상에 놀라고 분노했다.

당시 <월간 조선>에서 함께 근무하던 나는 그의 분노가 ‘반공反共’이라는 이념의 틀이 아니라 휴머니즘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느꼈다. 겉으로는 그럴싸한 자주自主와 이데올로기를 들먹이며 호의호식하는 권력층 밑에서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북한 동포들의 현실에 분노한 것이었다.

조갑제는 나아가 자신이 북한의 실상을 폭로해 현실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었다. 과거 우리 군부독재의 성역에 도전했던 그가 민주화 이후 북한이란 새로운 성역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취재력을 북한에 집중함으로써 훗날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기자가 됐다.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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