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우파 포퓰리즘만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좌파의 독단도 우파의 혐오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셔터스톡

좌파 컨설팅 회사 시비스 애널리틱스의 유능한 컨설턴트였던 데이비드 쇼어가 날벼락을 맞은 건 트위터에 올린 짧은 글 때문이었다.

"인종 폭동은 민주당의 지지율을 2% 정도 떨어뜨리고, 비폭력 시위는 민주당 지지율을 높인다."

쇼어가 미국 프린스턴대 흑인 강사 오마 와소의 학술 논문을 이처럼 요약해서 글을 올리자마자 비난이 쇄도했다.

객관적 연구 내용이었지만, 시점이 좋지 않았다. 백인 경찰관의 과잉 진압 탓에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추모 물결이 절정에 달했을 때 글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오바마의 재선을 도와 승리로 이끈 선거전 베테랑이었던 쇼어는 과학적 사실만을 말하려 했다고 차분히 대응했으나 쏟아지는 비난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이 글 때문에 결국 직장을 잃었다.

플로이드 사망 1주기 추모 행진    /연합
플로이드 사망 1주기 추모 행진    /연합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 기자인 르네 피스터가 쓴 '잘못된 단어'는 인종, 젠더 등 예민한 주제를 다룰 때 단어 하나만 잘못 말해도 경력이 끝장나거나 격렬한 비난을 받는 현 세태를 분석한 정치 비평서다.

저자는 책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침해받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진보를 위한 무기이자 약자들이 특권층의 탄압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잘못된 단어'를 공격하는 일에 사활을 거는 새로운 독단주의가 좌파 문화에 스며들었다고 주장한다.

쇼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쇼어와 같은 목소리를 구조적으로 죽이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좌파 진영은 "자기 자신과 비판적 대화를 더는 나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에 근무하던 도널드 맥닐 주니어 기자도 진보 진영에 밉보여 직장을 잃은 경우다. 그는 학생들과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니그로'(흑인의 멸칭)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다른 사람의 발언을 인용하는 과정에서였다.

그러나 진보지의 표상인 뉴욕타임스는 이에 대한 진영 내 비판이 잇따르자 "우리는 의도와 상관없이 인종차별적 언어를 용인하지 않겠다"며 맥닐을 해고했다. 맥락을 보며 따져보기보단 진영의 비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진영 포플리즘에 포획됐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저자는 우파 포퓰리즘만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좌파의 독단도 우파의 혐오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헌법의 근간을 흔드는 우파 정치 세력에 맞서 투쟁"해야 하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좌파 정치 세력의 변질 역시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그것을 분노의 연료로 사용하지 않는 쿨하고 여유로운 자유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민주주의 진영이 비자유적 방법을 쓰면 결국 자신을 해친다"고 지적한다.

문예출판사. 배명자 옮김. 232쪽.(서울=연합뉴스)

문예출판사 제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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